2014. 3. 9. 17:53ㆍShared Fantasy/Culture
요즘은 아이돌 그룹에서도 래퍼 포지션 없는 팀이 없을 정도로 힙합 또는 랩이 대중에게 무척 친근해졌다. 길을 거닐다가도 아이돌 랩은 상점 스피커를 통해 흔히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속사가 번지르르한 힙합퍼나 아이돌이 아니고는 '랩하는 사람들 없는거야?' 싶을 정도로 랩퍼들의 무대는 접하기 쉽지 않다.
소위 한국에서도 골든에라로 불리우며 세기말 힙합 전성기였던 90년대 후반, 공연장 겸 클럽 마스터플랜은 래퍼가 처음 마이크 쥘 수 있는 기회를 줬고 힙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커뮤니티도 만들 수 있었던 힙합의 성지였다. 마스터플랜이 문을 닫으면서 MC들이 편하게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통해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진 것이다. 대체 힙합 꿈꾸는 사람들 다 어디서 랩하는거야?
얼마 전,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다. 힙합을 좋아하고 랩 하기위해 마이크를 잡는 이들이 매 주말마다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역의 최전선에서 힙합하고 있는 가리온의 진두지휘로 힙합을 꿈꾸고 랩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무대가 매주 일요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 피브로 사우드 스튜디오에서 열린다. 지난 2월 16일, 일곱 번째 열렸던 '모두의 마이크'에서 MC 메타에게 행사 설명과 가리온 근황에 대해 들어 보았다.
Q) 열다섯 살에 힙플에서 가리온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나요. 10년이 지나 스물다섯이 되어 마주했는데 가리온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많은 이들 또한 그렇게 느낄 거로 생각합니다. 2013년 11월, 15주년 기념 앨범을 내고 감회가 새로웠을 거 같은데 데뷔 때와 지금, 가리온의 성향 같은 면면 중 변한 게 있을까. 15년 동안 가리온은 어떻게 변화해왔나요.
15년 전이랑 지금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두 사람 모두 유부남이 되었다는 거. 나찰은 얼마 전에 예쁜 딸의 아빠가 됐어요. 여전히 목표하고 있는 바에 따라 음악 활동하고 있고요. 글쎄요. 그 외에는 큰 변화는 딱히 없는 거 같아요. 15년 전에 데뷔하고 나서 2장의 앨범, 2장의 싱글 앨범 그리고 작년에 15주년 기념 앨범 낸 뒤 음반, 음원, 공연활동은 계속하고 있죠. 큰 변화는 우리 둘이 유부남이 되었다는 것뿐이에요.
Q) 사적인 면만 변했고 음악적이거나 외적인 건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죠?
그렇죠. 저희가 항상 인터뷰 통해서도 말하는 건데 저희가 목표하는 바가 뚜렷해요. 때로는 과감하게 시도도 해보고 때로는 저희가 가진 것들을 되돌아보는 작업들도 하는데, 예를 들면 저희 콘서트에서 과거 작업했던 곡들을 다시 편곡하여 선보이기도 하죠. 과거의 작품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저희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도 저희가 음악 활동 기간 계속 해왔죠. 진보적인 측면에서도 음원이나 라이브를 통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Q) 1998년 3월 블렉스 2집에서 <거짓>, <그래서 함께하는 이유>를 소개하며 데뷔한 걸로 알고 있어요. 15주년 기념 앨범 나온 지 3개월이 지났는데 보름만 지나면 데뷔 16년이에요. 20주년도 멀지 않았네요. 20주년에는 특별히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평소에 이런 거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있어요. 힙합 디너쇼 한번 해보고 싶어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다들 앉아 식사하며 술 드시면서… 재미있을 거 같아요.
Q) 가리온이 직접 소개하는 모두의 마이크는 어떤 것인가요. 취지와 소개 부탁드려요.
이름 안에 모든 의미가 담겨있어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랩으로 표현하고 마이크 앞에서는 평등하잖아요. 그게 저희 취지에요. 이유를 짚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힙합이 해를 거듭할수록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아지잖아요. 아이돌 팀을 보더라도 래퍼 없는 팀이 없어요. 과거에 비해서 아이돌 팀 래퍼들 랩 수준도 높아졌고요. 그런 현상들이 증명하죠.
반면 그렇게 랩 음악, 래퍼 공급과 꿈꾸는 사람은 많은데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없어요. 다들 디지털 싱글, 음원 만들며 개인 채널에서만 어필하고 있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루트가 없죠. 즉, 무대가 없어요. 2002년 마스터플랜이 문을 닫고 난 다음에 정기적인 공연들이 이뤄지는 무대가 거의 없었어요. 래퍼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없는 거 같아요. MC들은 무대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아야 MC인데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는 계기가 전혀 없죠.
저희도 이런 저런 노력을 해왔어요. 돈이 많은 스폰서를 잡거나 공연장을 운영할 여건이 못됐는데 얼마 전 피브로 사운드에 의사를 전달했더니 회사에서 스튜디오를 내주었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어요. 이 스튜디오는 무상이니까요. ‘이렇게 작게나마 움직여보자.’ 라고 시작하게 된거죠.래퍼들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단순히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현재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해서 MC들을 양산하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Q) 모두의 마이크뿐만 아니라 가리온의 메타, 나찰 두 분 모두 지금까지도 강단에 올라 후배 양성 또는 힙합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계세요. 궁극적으로 만족할 만큼 이뤄보고 싶은 기대 현상이나 단편의 결과가 있나요?
일단 단편의 결과라면, 성과죠. 트레이닝을 하거나 제자들의 음악적 성과, 음원 같은 것들은 지금도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자신의 음악 활동들을 이어가고 저희도 현역 플레이어로 있으니까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길 수 있고요. 올해나 내년쯤이 되면 제자로 만났던 인연,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 작업물이 나올 거 같아요. 음원, 앨범으로요.
후배 양성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랩 트레이닝이나 랩 레슨이라는 호칭에 부정적인 견해가 있어요. 강단이나 트레이닝을 통해서 만나는 래퍼들한테 좋은 랩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코치 역할을 해주는 거죠. 랩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거니까요. 저희는 '이런 랩이 옳고 틀렸다' 보다는 퍼스널 트레이닝처럼 개인이 맞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빨리 뽑아내서 극대화하고 과정상에서 효율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면 조언을 하는 편이죠. '자 랩은 이거니까 이렇게 해' 이런 건 터무니 없어요.
Q) 예를 들면, 표현 방법을 좀 다듬어 주는 형태지 스피릿이나 느낌에 관한 강의는 아니군요.
그럼요. 표현 방법도 크게 관여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표현을 해야죠. 기술적인 측면에서 저희는 그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술을 뽑아낼 수 있도록 옆에서 코칭해요. 예를 들어 야구를 던질 때, 커브를 던져본 적이 없는데 신체적 조건이 최적이다 싶으면 커브볼 트레이닝을 돕겠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리듬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좋은데 그 스타일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그 사람에 대한 파악이 안된 거죠. 이런 식으로 래퍼에 대한 파악을 하고 돕고 있어요.
Q) 하시는 여러 활동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힙합이 묵인되거나 사라질 수 없게 꿋꿋이 지켜나가는 ‘집안의 가장’ 같습니다. 힙합 1세대, 많은 후배들의 존경의 대상이라는 위치가 끊임없이 고심하고 고민하게 될 거 같은데요. 한국 힙합을 이끄는 선두에서 꼭 지키고 싶은 신념 같은 게 있다면?
큰형님, 시조새 이런 표현 들어봤어요. 저희 앞의 수식어는 대중이 붙여주신 거니까요. 저희 스스로 느낄 때, 우리가 대한민국 힙합 씬에서 중요한 누구이기 때문에 어떤 의무감 그런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아요. 씬에서 굉장히 스타일리쉬하고 멋진 열아홉 살 래퍼가 등장한다면, 저희도 똑같이 자극을 받아요. 저런 플로우, 스타일, 기술 등 멋지다며 경쟁해보고 싶다는 생각 여전히 해요.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만약에 저희 팀에 오래했고 많이 해먹었으니까 그냥 적당히 리스펙트 유지하면서 앨범 한 두 장 던지면서 힙합 씬에 역사로 남아있자 이런 생각했다면 저는 이렇게 음악 안 했을 거에요. 저의 역량이나 모든 측면들이 작동을 멈출 때까지 끊임없이 배틀을 하는 마음으로 음악 할거에요. 그게 누구를 죽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힙합은 문화고 경쟁이라고 이야기 하는 게 모든 힙합에 동기나 에너지가 되는 측면이 그거에요. 내 발전에 밑거름이나 동기가 되는 선의의 경쟁이요. 악의였으면 전쟁이죠.
멋진 사람을 보면서 '아 난 루저야' 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렇기보다 자극 받아서 더 뛰어넘고 싶은 욕심이 생기죠. 그게 자연스러운 힙합의 기본인 거 같아요. 디제이, 비걸, 비보이, 그래피티 같은 모든 파트에 그런 전제가 깔려있어요. 자연스러운 배틀.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부담 같은 건 전혀 없어요. 여전히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고 저희가 갈 수 있는 한국 힙합의 끝까지 가보는 게 목표에요. 가는 과정 중에서 느끼는 다양한 자극들은 신예건, 워너비건, 프로건 상관없이 똑같이 느끼며 반응하는 거죠.
Q) ‘가리온’ 하면 언더그라운드 이미지가 강해요. 15년 동안 고집해 온 이유가 있나요? 혹 살짝 이라도 상업성을 더해 힙합을 모르는 대중과도 교감해 볼 의심은 없었나요?
음반, 음원을 제작하고 파는 행위 자체가 상업이죠. 굳이 따지면 저희도 상업 힙합 팀이에요. 아마 질문 주신 의미가 '대중의 기호에 맞는 음악들을 하는 건 어떠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저희도 사실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대중의 타겟이 좀 달라요. 저희는 힙합퍼들한테 맞춰져 있는 거죠. 힙합이라는 문화를 이해하고 그걸 즐기고 고유의 멋과 맛을 이해하며 문화권 내에 있는 그분들이 대상이자 저희의 대중이죠. 저희는 꾸준하게 그 대상들을 향한 랩을 해왔고 그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어요.
Q) 힙플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한 문화를 향유하는 기간이 짧고 취향이 빨리 바뀐다는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던데 실제로 힙합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일회성 혹은 단발성으로 소모되고 있어요. 가리온에게는 생활 힙합 같아요. 힙합을 고수해 온 자랑을 좀 해주세요. 예를 들면 힙합만이 가진 매력이라던가. 힙합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계기라던가.
저는 래퍼, MC 메타로써의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구분 지어져요. 단순히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느껴요. 좀 재미있는 이야기에요.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의 기억들은 희미해지겠죠. 그런데도 저는 힙합 뮤지션으로 살기 이전의 고교, 대학 시절이 굉장히 흐릿해요. 그 정도로 의미 있는 시간들이거나 기억되는 사건, 추억들이 별로 없어요.
마이크를 쥐고 무대에 올라 랩을 하고 음악을 듣던 시점부터는 지금도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해요. 그 이전의 삶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메바 수준이에요. 그 때 기억이라고는 학교 생활 하던 거, 아무런 목표 없는 진학, 나이 먹는 거, 열 여덟에 '앞으로 뭐하고 살지'를 고민했고 대학에서는 '내가 왜 살고 있지' 같은 고민을 했던 정도? 그게 제가 부정적 이여서가 아니라 쳇바퀴 삶이 지루했었나봐요.
음악을 접하고 직접 하면서 삶이 완전 다 바뀌었어요. 단순히 '힙합이 제게 이런 걸 줬어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로운 삶인 거 같아요. 좀 오버하면, 제 몸의 화학적인 것까지 다 바뀌었어요. (웃음) 성격, 사람 대하는 방식, 주변 커뮤니티 전부 바뀌었거든요. 그게 제 가사나 무대에서의 모습, 음악으로 재구성돼요. 그리고 그런 삶, 생각을 가사로 뱉잖아요. 그게 다시 제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지 다음 스텝을 만들어 주는 거에요 그 스텝으로 얻게 된 걸 또 랩으로 토하죠.
Q) 힙합에서 받거니 내가 주거니 하는 거군요.
그렇죠. 내가 힙합을 느끼고 접하는 게 얼만큼이냐에 따라서 제 삶의 방향이 계속 만들어져 가는거죠. 20대 초 중반 때까지만 하더라도 잘 몰랐어요. 90년대 말쯤에 우탱클랜의 르자가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밥 먹는 것도 힙합, 숨 쉬는 것도 힙합, 똥 싸는 것도 힙합" 이라고 했어요. 당시에는 이해를 잘 못했어요. 제가 그렇게 살아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삶 자체가 음악으로 만들어진 거에요.
나찰도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 많이 했어요.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이 학창시절에는 소심해서 책 읽기도 제대로 못했대요. 그런데 무대에서는 영혼을 토해내며 무서운 표정으로 어마어마한 랩을 한단 말이죠. 대다수가 그럴 거에요. 힙합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요. 하지만 힙합 좀 멋진 거 같다 싶어서 따라 하며 유행하는 비트에 가사 좀 쓰다가 기획사 들어가는,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케이스는 이걸 느끼기 힘들 거에요. 뿌리가 없는 거죠. 힙합퍼라고 말할 수 없는 거죠.
Q) 모 매체 인터뷰에서 ‘가리온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언급하셨어요. ‘가리온을 위한 음악’이란 게 어떤 것인가요?
저희한테도 가리온은 '아이돌'이에요. 100년, 200년은 못 살지만 가리온이라는 팀 자체는 오래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모든 팀들이 그렇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적인 방향이 구체화되고 뚜렷해지면서 온전하게 가리온은 어떤 영향에서 독립적인 형태로 있기를 바랬어요. 음악적 스타일이나 팀의 모든 것들이 상징성을 띄었으면 했죠. 아마 그런 의미에서 가리온을 위한 음악이라고 표현한 거 같아요.
Q) '음악적으로나 큰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이런 의미로도 들릴 수 있겠네요?
그렇죠. 원래 가진 성향과 성격 자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가리온이 되고 싶어요. 가리온의 음악, 철학, 태도 같은 것들이 굳건하게 유지됐으면 해요. 상징적으로요.
Q) 힙합에도 다양한 입맛이 있잖아요. 특히 요즘 대두되는 달달한 힙합, 가리온은 어떤가요? 개인적으로 <그 날 이후>가 지금 발매된다면 큰 사랑 받을 거 같아요.
앨범은 적어도 오랫동안 랩 해오면서 사랑 주제의 곡이 '생명수', '그 날 이후' 두 곡뿐인데요. 사실 그 곡도 이성간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커먼(Common)이라는 래퍼가 'I used to love her'이란 곡에서 힙합을 어린 시절 만났던 첫사랑으로 비유했던 것처럼 저희도 힙합을 의인화 해서 첫사랑이자 연인처럼 가사를 썼어요. 실제로 어떤 이성간의 러브 어페어를 다루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목숨과도 같은 생명수'라고 비유한 생명수 곡 역시 마찬가지고요.
조금은 한국에서 특화된 발라드 랩 스타일이 저희에게 큰 관심거리는 아니에요.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슈거리가 남녀간의 이성, 사랑 이야기잖아요. 저희는 장르 음악을 하고 장르 안에서도 가리온의 성향이 뚜렷한데 갑자기 그런 사랑이야기 곡을 할 수 없죠. 사자가 고기 아닌 당근을 먹는 것처럼요. 안 하거나 무시하는 문제가 아니라 저희가 못하는 거 같아요.
저희 감정이나 생각이 그런 사랑 이야기에서 피어나기 힘든 거 같아요. 사랑에서 느낀 감정이 발라드 랩으로 표현되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주제 자체가 사랑보다는 삶이니까요. 물론 저희가 사랑도 안하고 거칠게 전사의 삶을 산 건 아니지만 (웃음) 저희가 다루는 음악의 주제 안에서 사랑은 없어서 힘들 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다양성을 추구해보자고 해서 시도한 곡이 '그 날 이후'와 '생명수'에요. 두 곡만큼은 저희도 충분히 하죠.
Q) 15년동안 가리온은 정규만 2개의 앨범을 선보였어요. 팬들은 끊임없이 가리온의 움직임을 추종합니다. 두 개의 앨범, 팬들은 서운할 수도 있어요. 얼마 전 발매된 15주년 기념 앨범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완성된 걸로 압니다. 설명을 좀 해주세요.
15주년 앨범이 굉장히 짧은 기간에 제작이 됐어요. 처음에는 제작도 못할 뻔 했어요. 음원이라 그나마 준비기간이 줄어든 건데 그 앨범은 저희가 소속사 없이 저희끼리 준비한 거거든요. 2012년에 미리 '기념 음반을 준비해보자'라고 이야기는 나눴는데 아무래도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 한 계절을 거의 다 보내다 보니 여유가 많이 없었어요. 데뷔 10주년도 그냥 지나쳤었는데 15주년을 그냥 보내기가 그래서 연말쯤에 꼭 해보자 싶어서 준비했어요.
Q) 해야 한다는 의지는 있고 급박하게 됐다는 의민데 3집은 어떨까요?
2010년 2집 이후에 벌써 4년이 되서 올해 말쯤에는 3집을 꼭 내보자 라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설레발이 좀 있어서 저희 스스로도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모두의 마이크 시작을 알리는 MC 메타.
이 날은 특별히 행사 시작 전에 루미넌트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의 음원 관련 세미나가 있었다.
마이크 쥐는 순서를 뽑고 있다.
첫 무대를 연주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 99년생 래퍼.
순서대로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인다.
DJ와 함께 장비를 만지는 MC 메타.
누구나 마이크를 쥐고 여러 사람 앞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일 수 있는 '모두의 마이크'는 매주 일요일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가리온의 소속사 피브로 사운드 지하 1층에서 개최된다. 사전 접수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마이크를 쥐는 래퍼뿐만 아니라 힙합을 좋아하는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 당일 행사 시작 전에 무대에 오를 래퍼 신청을 받으며 뽑기를 통해 순서를 정한다. 가리온의 MC 메타가 시작을 알리면 순서대로 무대에 올라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인다. 종종 음원, 앨범 등 뮤지션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정보의 세미나도 함께 진행된다.
발만 디딜 수 있는 작은 단상에 불과하지만, 누구나 발 디디고 오르면 넓은 무대의 공연장 못지않게 프로가 된 마냥 준비해 온 혹은 즉석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뱉는다. 조용할 것 같은 친구도 단상에 오르면 리듬을 타며 즐기는 모습이 화려한 비주얼로 TV에 등장하는 힙합퍼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때로는 말을 버벅여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비웃거나 핀잔 주지 않는다. 누구 하나 눈치 보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웃고 응원하며 함께하는 모습이 진정 '힙합'으로 하나 되는 게 아닐까.
작게나마 힙합의 진짜 문화가 실현되고 래퍼들에게는 꿈을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것이 무척 반가울 따름이다. 이런 좋은 자리를 기획하고 몸소 나서서 진행하는 가리온에게 노고의 박수를 보낸다. 어떤 한 문화의 중심이자 근간이라는 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따를 것이다. 원래의 목표처럼 가리온 만의 스타일로 힙합 계속 해주길 바라는 게 팬의 마음일 것이다. '소문의 거리'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또 10년 후에, 20년 후에 가리온을 다시 마주한다면 그땐 우리의 자식들에게도 '불멸을 말하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임예성, 사진 : 임예성